현대북한연구 3권 1호 2000
- 발행일
-
2000.04.30
- ISSN
-
1229-4616 (Print) / 2713-6051 (Online)
간행물 소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전쟁은 역사가 아니라 남북한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비극적 현실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이제야 말로 적대와 갈등으로 얼룩진 '6·25담론(談論)'을 평화와 공존·공영을 말하는 '7·27담론'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전쟁'에서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의 대전환과 함께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김대중 대통령도 분단 책임을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의 한반도 점령"으로 돌렸다. 북한과 소련에 더 많은 책임을 지우던 시각과 달리 주변 강대국에 의한 분단이라는 중립적 평가를 내린 것이다.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한반도에 해빙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국내정치는 여전히 '주적' 개념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국민들 사이에 혼란이 일고 있다.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은 다차원적이고 심도 있는 제도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전쟁상태이며,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긴장이 존재하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6·15공동선언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명시하고 있지만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이를 끝내기 위해서는 늦었지만 그 의미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에게만은 멈춘 것 같던 시계추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부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의 중층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북한연구』는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학계의 한국전쟁 재조명 움직임과 관련, 이번 호 기획논문 주제를 "한국전쟁, 반세기 이후의 재해석"으로 정했다. 남북한 관계의 변화 기류 속에서 한국전쟁의 중층적 의미를 되새겨 분단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최근 중국과 러시아에서 비밀문서에서 해제된 1차 자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한 글들을 실었다. 기존 정치학계의 전쟁기원론과 책임론 공방에서 탈피하고자 하였다.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난 분석으로 자료에 바탕을 둔 실증적 연구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이번 기획논문의 특징이다.
기획논문은 모두 2편을 실었다. 그 동안 미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덜 알려진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을 파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국인 학자의 글만을 게재했다.
楊奎松의 "중국의 조선출병 시말"은 최근 공개된 구 소련과 중국 측의 한국전쟁 관련 문서에 기초하여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결정 과정과 목적을 논한 것으로서 연구의 창의성과 자료의 충실도가 돋보인다. 이 글은 중·러시아 측의 자료에 대한 소상한 분석을 통하여 중국의 파병 결정과정을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로, 중국의 지도부는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중국의 개입 없이는 한국전쟁에서 공산권이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두 번째 시기는 10월 2일부터 10월 5일까지이며,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해당되는데, 이 시기 중국의 지도자들의 한국전 상황에 관한 판단은 매우 비관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두 번째 시기의 분석에서 필자는 유소기는 개입에 반대입장을, 모택동은 개입지지 입장을 보여주었음을 중국내부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10월 8일부터 13일까지이다. 이 시기는 모택동의 의사에 따라 중국의 개입이 결정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에 기초한 중국의 개입과정 분석은 기존의 한국전쟁 연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논문은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에 한국전쟁 직전 한국전쟁에 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존의 가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스탈린과 모택동이 1949년 12월 16일, 12월 24일, 1950년 1월 22일에 세 번의 회담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이러한 공식적 회담 이외에도 적어도 두 번의 비공식 회담을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앞으로 중국 측의 문서발굴을 통하여 이 주장의 타당성 여부가 검증될 수 있는지를 기대해 볼 만하다. 아울러 이 논문은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10월 2일자의 전문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관해서 가장 권위있는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沈志華의 글은 한국전쟁 결정과정에서 스탈린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 사실을 광범위한 러시아 자료를 통하여 설득력 있게 검증하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자료는 기존에 우리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구 소련측의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논문은 지금까지 발표된 어떠한 논문보다도 한국 전쟁 당시 소련공군의 참여과정, 배치지역, 작전범위 설정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독창성이 단연 돋보인다. 이 주제의 분석 과정에서 한반도 내부로의 전쟁 확대 범위를 두고 벌어진 중국과 소련 사이의 마찰을 소상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산권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이 논문은 한국전쟁 개전부터 종전 시기까지 소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새로운 자료와 논지의 일관성을 갖고 논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 외에 현대북한연구는 네 편의 일반 논문과 주제 서평을 실었다.
<중략>
현대북한연구는 이번 호에도 순수 전문 학술지를 지향한다는 창간의 辯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책적인 글을 배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이 북한학의 질적 발전에 작지만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현대북한연구는 능력있는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고 객관적이고 독창적인 논문을 게재하려는 노력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새로운 북한연구.
2000년 6월
편집주간 최완규
목차
- China''s Military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다운로드
- Russia and the Korean War다운로드
- Analysis of North Korea''s Market Economy in 1988다운로드
- Behavioral Patterns of North Korean Enterprises - A View of Comparative Economic Systems다운로드
- Official Knowledge in North Korea, 1945-1950: An Analysis of Elementary School Text Books다운로드
- The Study on Linguistic Strategy of Kim Il Sung''s Speech다운로드
- A Multi-Dimensional Approach to U.S.-DPRK Nuclear Negotiation: Dynamics of Confrontation and Compromise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