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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북한연구 8권 1호 2005

현대북한연구 8권 1호 2005

발행일
2005.04.30
ISSN
1229-4616 (Print) / 2713-6051 (Online)
간행물 소개
이제는 '북한은 과연 변화했는가'라는 명제보다 '북한은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북한 현실을 바라보는 더욱 적합한 기준이 될 것 같다.『현대북한연구』 8권 1호에서는 그 동안 지속해 온 1940~50년대의 국가 형성기에서부터 1980년까지의 시대별 북한연구의 연장선상에서 1990년대 ‘고난이 행군’이 북한체제에 미친 영향을 기획특집으로 하였다.

북한은 1995-1997년을 고난의 행군시대, 1998년을 사회주의 강행군의 해로 명명했다. 북한에 있어 1990년대는 부족의 경제(shortage economy)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내외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그 후 ‘유훈통치’가 시작되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체제가 전반적으로 이완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역량의 대부분을 체제유지에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부족의 경제의 만연화속에서 배급제의 위기가 찾아왔다. 배급제는 곧 북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배급제의 위기가 가져온 식량 미공급 상황은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공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야 함을 일깨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 사회 전반적인 이완을 가져왔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도한다. 사회주의국가들이 개혁과 개방 혹은 체제전환을 선언한 이후 쿠바와 더불어 현실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의 행보를 가늠해 보는데 있어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그 단초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먼저 김갑식은 신내재적 접근방법으로 ‘고난의 행군→혁명적 군인정신→선군정치’라는 일련의 담론구조를 살피면서, 고난의 행군과 선군정치 양자간의 연관성을 살피고 있다. 북한이 군을 선택하게 된 시점이 김일성 사망 후가 아니라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를 지켜보면서 결정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혁명적 군인정신’을 들고 나온 이유가 고난의 행군을 뚫고 나갈 새로운 혁명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선군정치에서 군은 전쟁과 조국방위뿐만 아니라 혁명과 건설을 함께 수행해나가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인민군대가 북한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그 위상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나 당-군관계에서 있어서는 변화가 없으며 또한 현실에서도 당이 군을 통제하는 기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당분간 인민군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보면서도 선군정치가 강화될수록 역으로 그만큼 효용도가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차문석은 ‘고난의 행군’이 북한 경제의 축적 체제와 조정기제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의 외연적 축적 체제와 관료적 조정양식이 과도기 축적 체제와 시장적 조정 양식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경제에 위와 같은 구조적 전환이 발생함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관계의 변화라는 거시적인 구조를 살피면서 구체적으로 공장 및 기업소와 이를 토대로 공적 사적 삶들을 꾸려 나갔던 노동 사회를 분석한다. 그는 북한의 외연적 축적 체제의 주요한 기제인 현물 동학 갖는 성격으로 인하여 ‘증여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수령의 가부장적 지배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증여 체제의 대표적인 사례인 배급제의 교란과 중단에 의해 국가 권력에 대한 물질적,정서적 지지대가 사라져 새로운 질서로의 전환이 기존 질서 속에서 배태된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은 교환 가치 지향적인 인간들을 양산해 냈고, 이는 배급제의 불안정성과 더불어 공장이 제 기능을 정지함에 따라 노동사회와 국가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나아가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종합조치에 대해 국가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노동사회의 공간을 공적인 영역으로 확보하기 위한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하면서 북한 경제의 위와 같은 변화는 불가역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최용환은 1990년대 북한이 대내외적인 정황 가운데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장기적 전망마저 불투명한 상태에서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은 미국을 상대로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정책적 수단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북한이 핵문제를 통해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고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완화시키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금창리 사건 역시 동일하게 북한이 금창리 시설 사찰을 허용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보상과 정치, 경제적 관계 개선 조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중략>

북한에 대해 순수한 학술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현대북한연구가 학진 등재 후보지가 되었다. 북한연구에 학제간 접근들이 시도되고 논의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진학자들을 비롯해서 우리 북한연구자들의 많은 논문 공모를 기대한다.

2005년 4월
편집주간 구갑우
목차
  • Studies on North Korean Socity or Sociological Approaches to North Korea다운로드
  • North Korean Foreign Policy toward U.S. in the Post-Cold War Era다운로드
  • ‘Arduous March’ and North Korea's Economy다운로드
  • 'Arduous March' and 'Military-First Politics' in the 1990's다운로드